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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일자리문제 그리고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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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논술 작성일16-03-10 11:01 조회1,5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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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자연에 변형을 가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그대로만이 최상이며 일체의 인위적·인공인 것은 배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에 의한 개발은 당연히 최악이다. 그들은 고속도로 반대, 중화학 단지 반대, 포항제철 반대, 신공항 반대, KTX 반대, 새만금 반대였다. 평생 반대로 일관한 늙은 교수에서부터 젊은 활동가까지 세대·지역·성별·종교의 구분도 없다.

어떤 사고 구조를 가졌기에 그들은 사사건건 반대 또 반대만 외칠까. 심지어 자신이 틀렸다는 게 명백히 드러나도 생각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인지 부조화 때문일까. 정치적 견해 때문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대중은 또 왜 그렇게 쉽게 동조할까. 자연 훼손에 대한 소박한 반발일까, 아니면 문명에 대한 적대감일까. 무지의 소산일까.

이런 반(反)문명적 사고의 이면에는 오랜 기간 인류의 DNA에 각인된 자연정령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새로운 기술·기계·물질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는 다양한 변종으로 나타난다.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문명에 대한 반감도 커진다.

 

개발은 惡, 보존은 善…‘아바타’식 편향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2009년 작 ‘아바타’는 외계 행성 판도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나비족의 평화로운 삶을 지구인이 불도저로 짓밟는다는 설정이다.

외양은 SF인데 내용은 미국 인디언들의 수난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분개할 만한 ‘자연 대 개발’의 선악 구도다. 국내에서 1330만 관객(역대 4위)을 모을 만큼 반향도 컸다.

‘아바타’와 유사한 프레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이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아바타’는 미야자키의 ‘모노노케 히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나같이 인간이 훼손한 자연의 복수를 담고 있다.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선 교훈적인 면도 있다. 자연물 하나하나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아바타’ 유형의 정령주의는 대중의 공감을 쉽게 얻는다.

하지만 ‘아바타’식 프레임에 지나치게 기울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자연에 손대는 것은 무조건 악(惡)으로 간주하는 환경교조주의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개조 없이 개별 인간이, 아니 70억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무책임한 몽상이 되고 만다.

현생인류가 등장한 것은 12만 년 전쯤이다. 인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광포한 자연과 투쟁했다. 지진·태풍·해일 등의 천재지변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본능적으로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에 경외심을 갖고 자연을 영적 존재로 여기는 자연정령주의가 생겨났다.

원시종교에선 대개 해·달·바다·강·산·바위·나무 등을 숭배했다. 나아가 영혼·신령·정령·요정 등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애미즘(animism)은 현대 종교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 등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물활론(物活論 : hylozoism)도 같은 맥락이다.

인류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 문명은 고작 3분에 불과하다. 인류 DNA에 ‘자연정령주의적’ 사고가 깊이 각인된 이유다. 그렇기에 ‘자연으로’라는 구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속에 파고든다. 자연은 선, 인공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인간 심리 속에 내재화돼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친근감은 반대로 자연적이지 못한 것, 즉 인공적·인위적인 것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으로 발현된다. 가장 원초적인 반응이 먹을거리 불안 심리다. 가공육 발암물질 논란이나 화학조미료·식품첨가물·유전자변형식품(GMO) 등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도 그런 현상이다. 일부 종교 신자들의 수혈 거부에도 내 몸 안에 외부 물질이 들어와 나를 다른 존재로 바꿔 버릴지 모른다는 거부감이 투영돼 있다. 새로운 물질·기계·기술에 대한 공포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 DNA에 깊이 각인됐다. 19세기 초 영국 직물 공업 지대에서 벌어진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은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반감과 기술 문명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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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공동체 향수가 환경교조주의 낳아

영국의 여류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0년)’은 문명 발전에 비해 인간의 의식이 지체된 데서 비롯된 산물이다. 과학기술 문명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현대의 유나바머와 블랙 해커들은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부를 만하다.

요즘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도 그 기저심리에선 동일하다. 히피·비건(극단적인 채식주의자)·프리건(극단적인 반소비주의자) 등처럼 생활에서 다양한 문명 거부 행태가 나타난다.

물론 자연은 잘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을 위해선 자연의 효율적 이용도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개발만능주의를 지양해야겠지만 환경교조주의자들도 이제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을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조건 개발 금지가 아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가 ‘도시의 승리’에서 지적했듯이 고밀도 도심 개발로 도시를 더욱 집적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환경보호라는 역설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론자들의 바이블인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여 동안 자급자족하며 전원생활을 예찬한 것이다. 문명을 멀리하는 생활은 현대인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도나도 소로처럼 살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어떤 숲과 호수도 파괴와 오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에겐 타당해도 전체에는 최악이 되고 마는 소위 ‘구성의 오류(부분적 성립의 원리를 전체적 성립으로 확대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다. 더구나 소로는 월든으로 가기 직전 1844년 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강변에서 순전히 부주의로 숲 121만㎡를 잿더미로 만든 장본인이다.

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78호)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현금을 똑같이 나눠주자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도 돈을 준다. 우리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급진적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 여러 나라의 움직임은 이를 좌파의 전유물로 보기 어렵게 하고 있다. 핀란드는 지난해 10월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예비연구를 시작했다. 자기 나라에 적합한 기본소득 모델을 올 하반기까지 만들고 내년부터 ‘실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스위스는 오는 6월 기본소득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네덜란드에선 19개 지방정부가 기본소득 지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대 복지국가 모델의 원조인 영국에서도 최근 왕립예술협회(Royal Society of Arts)가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했다.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이 단체는 25∼65세 성인에게 연간 3692파운드(약 63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자고 제안했다. 실행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추가 비용은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만 있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왜 갑자기 여러 나라가 앞 다퉈 기본소득 도입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한계에 이른 복지국가 시스템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1970, 80년대에도 유럽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동안 주목받지 못한 개념이 최근 급부상한 이유는 복지국가 체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두려움이 기본소득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현재 복지 시스템에 회의적이다. 소득에 따른 차별적 지원이 가난한 사람의 ‘일할 의욕’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 임금이 오르면 복지 지원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의 전체 소득증가분은 크지 않다. 일명 ‘복지의 덫’이다. RSA의 앤서니 페인터 정책·전략국장은 지난해 12월 16일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빈곤층이 저임금 악순환에 갇히는 동안 복지 시스템은 엄청나게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페인터 국장이 말한 ‘엄청 복잡한 복지 시스템’은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쪽의 중요 근거다. 대부분 국가는 가난한 사람을 골라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우리도 소득, 재산, 부양가족 등을 따진다. 누가 혜택이 필요한지 파악해야 하는 ‘행정비용’이 발생하는 시스템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크워크 대표인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4일 “기본소득 체제에서는 누가 부자인지 가려낼 필요가 없다. 행정비용을 줄인다는 면에서 경제학자들이 좋아할 이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기존 복지 체계 축소는 불가피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 ‘핀란드의 기본소득 도입 검토’ 보고서에서 “세분화된 사회보장 급여를 폐지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함에 따라 일부 계층의 경우 복지 혜택이 급감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또 핀란드의 기본소득 추진을 ‘보편적 복지 확대의 결정판’이라기보다 ‘정부의 역할 축소’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는 발상은 단순히 ‘이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복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부추기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이 설득력을 얻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발달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다. 인공지능(AI), 로봇 등으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은 인간에게서 일자리를 뺏고 있다.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은 로봇에 의해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현상이 심화하면 인간에게 돌아가야 할 소득이 인공지능과 로봇을 만드는 몇몇 IT 기업으로 집중된다. 노동시장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때’를 쓴 리처드 리비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시장은 성장에 따른 부를 공유하는 기능을 했다. 임금을 통해 소득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상당수에게 일자리와 소득이 없는 사회는 소비가 위축되고 불만 세력에 의해 혼란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기본소득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와 IT 전문가들이 기본소득에 동조하는 배경도 이와 비슷하다. 일각에선 IT산업의 ‘영속성 확보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8일 오피니언면 기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인간의 제2의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기본소득이 낮출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이를 옹호하는 이유”라고 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국내에선 강남훈 교수와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출범시키고 기본소득운동을 벌이고 있다. 녹색당은 4월 총선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걸었다. 강 교수는 2009년과 2012년에 국민 1인당 연간 360만원씩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세금을 더 내면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는 “유럽에서 먼저 실현되면 찬성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정치적 여건상 우리가 먼저 시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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