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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러다이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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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논술 작성일16-03-10 11:11 조회3,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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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의 경고,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 풍경 1

러다이트 운동을 기록한 그림.(출처 :  Christopher Sunde, 퍼블릭도메인)

러다이트 운동을 기록한 그림.(출처 : Christopher Sunde, 퍼블릭도메인)

1811년 봄. 영국 노팅엄의 직물공장 노동자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귀리와 같은 식료품 가격은 치솟고 월급은 자꾸만 깎여갔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 위해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노팅엄의 성장을 이끈 양말과 레이스의 판매도 둔화됐다. 노팅엄에서 생산된 직물의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던 때였다. 판로가 막히면서 직물공장에서 기계로 생산된 직물은 창고에 쌓여가기만 했다.

공장주들은 형편없는 품질의 양말을 만들어낼 것을 지시하면서 다시금 급여를 내리겠다고 통보했다. 수직기로 나름 고급 양말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공장으로 흘러들어간 직물 노동자들은 어처구니없는 공장주의 주문에 불평을 터뜨렸다. 그러자 비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이들을 공장에서 내쫓기까지 했다. 기계의 도움으로 고숙련 노동자가 그리 중요치 않게 된 상황이었다.

이런 일들을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주와 협상조차 한번 시도해보지 못했다. 낮아진 임금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수십년째 이어졌지만 국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왕은 30여년 전인 1779년 결사법을 제정해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틀어막았다. 굶주림과 빈곤은 지속됐고 생계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위에까지 이를 즈음이었다.(Hellman, 2000)

당시 직물 노동자들은 ‘네드 러드’(Ned Ludd)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실존 여부가 불확실했던 그 누군가였지만 이들에겐 ‘러드 왕’, ‘러드 장군’으로 불리고 있던 때였다. 1770년 후반 네드 러드라는 소년은 게으르다는 핀잔을 듣고 어린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자 2대의 방적기를 파괴했다. 그런 그의 행적은 신화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뒤 네드 러드는 ‘로빈후드’와 같은 영웅으로 노팅엄 노동자들 사이에서 거론됐다. 실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네드 러드, 그는 빈곤과 굶주림, 공장주의 괄시와 탄압을 받아왔던 당시 노동자들에게 나름의 저항 방식을 전해준 지도자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1811년 봄, 분노에 찬 노팅엄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빈곤으로 내몬 공장주와 그 기계를 파괴했고 이들에게 네드 러드의 후예, 러다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됐다.

#. 풍경 2

일부 개발이 완료된 스마트톨링 시스템.(사진 출처 : 박상욱·최만철·이주안·전현수·김정주·이정우. 2012)

일부 개발이 완료된 스마트톨링 시스템.(사진 : 박상욱·최만철·이주안·전현수·김정주·이정우. 2012)

2015년 10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원 7233명은 정리해고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렇잖아도 박봉에 시달려왔던 중년 여성들, 조만간 이들은 보고서 몇 장에 의해 운명이 갈리게 된다. 한국도로공사는 2020년까지 스마트톨링 시스템으로 톨게이트를 교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마트톨링은 수납 무인화 시스템이다. 이미지 인식 소프트웨어로 차량의 번호판을 식별해 요금을 부과한다. 스마트톨링의 핵심 기술은 정확한 이미지 인식이다. 100km 이상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량의 번호판을 날씨나 기상 조건에 관계없이 정확하게 검출해내는 알고리즘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차종을 식별하기 위한 기계학습 알고리즘도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스마트톨링이 전국 고속도로에 깔리게 되면 수납원이라는 직종은 곧장 사라지게 된다. 버스 안내원, 지하철 운전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근무할 수 있는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생계를 위해선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만 요즘처럼 일자리가 귀한 시대엔 좀체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도로공사는 정년에 따른 자연감소분과 일부 인력에 대한 전환 배치로 해고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기저기에도 해당하지 않는 1100여명의 수납원들은 오갈 데 없이 잘려나갈 판이다. 김경협 의원실(새정치)의 심재정 보좌관은 “현재로선 고용영향평가를 강제하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수납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무인택시가 상용화되는 2020년이면 택시기사들의 일자리도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무인버스, 무인트럭도 줄줄이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수납원, 택시기사가 늦은 나이에 코딩을 배워 다른 직종으로 전환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저 기술 진보에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순응해야만 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이들이 저항하는 순간, 러다이트로 낙인이 찍힐 것이고 “기술적 편의를 거부하는 우매한 노동자”라는 질시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 : 산업의 소프트웨어화

(자료 출처 : IBM  Slideshare)

(자료 출처 : IBM)

현재 거의 대부분의 일자리가 자동화의 위협에 놓여 있다.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술은 1차적으로 저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점차적으로 고숙련 일자리로 영역을 확장해 갈 것으로 보인다. 법률 비서, 회계사, 진단 의사 등 고숙련 반복 노동의 영역에도 인공지능은 이미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는 중이다.

기술에 의한 일자리 위협은 산업의 소프트웨어화와 맞물려 있다. 레브 마노비치는 소프트웨어화를 “영화나 사진, 회화와 음악 같은 기존 미디어 제작 기술이 소프트웨어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운영의 기반이 되는 컴퓨터는 단순한 연산 장치에서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미디어 처리장치’로 바뀌게 됐다”(마노비치, 2013/2014)고 분석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화는 미디어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혁명을 하드웨어 혁명이라고 명명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은 소프트웨어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화는 가히 폭발적이다. 예를 들어, 전투기 F-35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산업연구원의 자료(2014)에 따르면 하드웨어의 특수 영역으로 분류됐던 자동차도 2010년 기준으로 소프트웨어 비중이 52.4%에 달했다. 통신, 전자기기 등도 소프트웨어화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고숙련 전문직의 업무를 파고들고 있는 인공지능도 실상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결합으로 구성된 소프트웨어화의 파생물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진전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던 커뮤니케이션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읽고 쓰고 보고 듣는 미디어적 행위가 컴퓨터에 의해 처리 가능해졌고, 그것인 산업 곳곳에 활용됨으로써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산업의 소프트웨어화가 진행되면서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요가 늘어나게 됐다. 자동화의 밑바탕이 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대량의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경험과 능력, 숙련된 수학적 스킬과 통찰력 등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정도의 숙련된 기술은 전체 소프트웨어 개발 직종 안에서 소수에 불과하며 일자리의 기회도 이들에게 집중될 공산이 크다.

높은 스펙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요가 커질수록 교육 수준이나 전문성이 낮은 개발자나 노동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이들의 평균 소득은 낮아지는 흐름을 띠게 된다. 불평등이 유발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디지털 기술, 불평등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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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중간계층 가구와 고소득 계층 가구의 소득 비교. 갈수록 격차는 커지고 있다.(자료 : 퓨리서치센터)

소프트웨어화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위기 신호를 발산하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지기 이전처럼 디지털 기술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쪽과 아닌 쪽의 양극화를 양산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술 보유자 가운데 일부는 성공적인 창업과 매각을 통해 수십, 수백억원을 벌어들이지만, 그 반대쪽은 해고와 구조조정의 일상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기술이 불평등을 야기하는가는 아직 학계에서조차 논쟁적인 주제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의 원인을 ‘자산의 되물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반면, ‘제2기계시대’의 저자인 에릭 브린욜프슨 MIT대 교수는 기술을 지목한다.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제가 데이터를 분석하기로는 기술이 최근 불평등 증대의 주된 요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Rotman, 2014.10.21).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 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불평등의 원인으로 다루는 전문가들은 적지 않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13년 <뉴욕타임스> 칼럼 ‘러다이트들에 대한 연민’에서 미국의 불평등이 커져가는 원인을 “첨단 기술 도입으로 인해 자본과 노동의 수익 배분이 바뀐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엔 IMF조차도 기술 진보가 빈부의 격차를 확대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최근 레딧 사이트에 “위대한 기술적 진보가 다수를 비참한 빈곤 상태에 남겨둘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술의 진보가 불평등을 해소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낙관은 그저 낙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평가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국내 연구 보고서나 논문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2014년 KISDI 정혁 부연구원은 “여느 혁명적 기술변화와 마찬가지로 ICT의 확산은 이익을 보는 집단과 피해를 보는 집단을 만들어내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앞서 2004년 서환주 상지대 교수 등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 변화의 영향력은 동일직능집단 내 임금격차를 확대시키는 경로를 통해 소득분배 상황 악화에 기여했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감소한 일자리만큼 새 일자리는 만들어질까

1998년 이후 2012년까지 실리콘밸리에 신규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없었다.(자료 출처 :

1998년 이후 2012년까지 실리콘밸리에 신규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없었다.(자료 출처 : Life In The Valley Economy)

이 모든 문제는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이 향후 사라진 일자리보다 더 많은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또한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정혁 부연구원은 “디지털 혁명은 분명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나, 일자리에 관해서는 성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며 “클라우드의 확산, 크라우드펀딩 등은 과거와는 달리 매우 적은 인력과 자본으로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적었다.

그나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저임금 직종을 양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임시적 경제”로 분류하고 “멋진 기회와 혁신을 제공하지만 노동자 보호와 좋은 일자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우버 등은 “오히려 기사들의 소득이 더 늘어났다”고 반박한다.

아우어한 등의 연구(아우어한, 2012)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최근 10여년 동안 실리콘밸리의 일자리 순증가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해 전기차 제조 스타트업 테슬라까지 수많은 IT 거인들을 탄생한 시기지만  일자리 순증이 없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증가한 일자리보다 사라진 일자리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실리콘밸리화할 경우 나타날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간 그리고 혁신의 공존?

테슬라 모터스의 모델S 제조 공장.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출처 : 위키피디아 Steve Jurvetson, CC BY 2.0)

테슬라 모터스의 모델S 제조 공장.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출처 : 위키피디아 Steve Jurvetson, CC BY 2.0)

러다이트 운동을 기계파괴 운동쯤으로 치부하는 견해는 그것이 가져온 사회적 효과를 간과한 데서 빚어졌다. 1811년에서 1816년까지 이어진 러다이트 운동은 악명 높은 영국의 결사법을 폐지시켜(1824년) 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일궈냈다. 러다이트 운동으로 결사법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결사의 권리’라는 시민권을 지금 향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분명 러다이트 운동에 빚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폭동’으로 인식되던 러다이트 운동은 1990년대 들어와 복권의 기회를 맞게 된다. ‘미래에 대한 반란’을 쓴 커크페트릭 세일은 “러다이트들의 혁명은 윤리적인 것이었다. 정의와 공정성을 내세워 무제한적인 이윤추구와 경쟁, 혁신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한 사건“이라고 재해석했다. 비록 그가 진보적 문명비판가이긴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러다이트 운동의 의미를 추출했다는 점을 평가받을 만하다.

러다이트는 기술 파괴, 기술 진보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해선 곤란하다. 러다이트 운동가들은 이미 기계에 충분히 익숙해 있었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고숙련 노동자였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이를 특허한 시점(1780년대)과 대비해보면 분명해진다. 러다이트 운동이 타오르던 시기는 이들 증기기관 방적기가 수십년째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이자 저항이었다면 굳이 30년 이상의 시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소프트웨어화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일자리를 늘려주고 윤택한 삶을 보장한다면 기술 혁신에 저항하는 이들이 조직화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파괴하기 위해 해킹을 시도하는 디지털 러다이트도 등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진보와 효율성을 명분으로 해고와 저임금을 강제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또다른 형태의 러다이트 운동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우버를 향한 전세계 택시 기사들의 저항은 전조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외의 상황은 200년 전 러다이트 운동이 전개됐던 상황을 서서히 닮아가고 있다.

 

 

 

 

 

뭐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고/

 

Cover Story - 4차 산업혁명…일자리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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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러드(Ned Ludd)라는 노동 운동가가 있었다. 영국 산업혁명 초창기인 1810년대에 이름을 날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섬유분야에서 일했다. 일자리가 섬유산업에서 가장 많이 창출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이때 나온 것이 방적기와 증기기관이다. 기계는 속속 도입됐고, 사람들은 실제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것에 격분한 러드는 그의 비밀조직원과 함께 밤마다 기계를 부수고 다녔다. “악마 같은 기계가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이 움직임을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부른다.

“자동차가 일자리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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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를 돌아보면 재미있다. 러드의 울분대로 일자리가 영원히 사라졌고 사람들은 굶주렸을까? 러드는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얼마 후 기계는 대규모 공장산업과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신기술로 생산성이 높아지자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농업시대나 산업혁명 초기보다 더 올라갔다. 기술혁신은 일자리를 당장 없애기는 했지만 곧 높은 임금을 주는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러다이트 운동’의 심리학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동차산업이 막 일어날 때인 19세기 중후반 마차산업 종사자들은 증기자동차라는 로봇을 보고 같은 증상을 겪었다. 마부들은 자동차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는 ‘붉은 깃발법’을 1865년 만들어냈다. 마차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사이 독일, 프랑스에 이어 20세기 미국에서 자동차산업이 폭발했다. 자동차산업이 창출해낸 일자리는 수십만개를 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20세기에 벌어졌다. 컴퓨터가 도입되면 기업에서 일하던 타자수들이 죄다 실업상태에 빠진다는 우울한 전망이 많았다. 우려했던 일은 실제로 나타났다. 1980년대 컴퓨터 도입으로 타자기를 다루던 타자수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만 해도 10만명이 훌쩍 넘는 근로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일자리는 수십만개에 달한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 다고 

최근 다보스포럼이라는 모임이 4차 산업혁명으로 5년간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으로 진화한 로봇산업이 번창하면 기존 일자리 700만개가 사라지는 반면 새로운 일자리는 200만개만 생긴다고 추측했다. 다보스포럼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19세기, 20세기에도 이런 말은 되풀이됐다. ‘새로운 기계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레토릭이다. 전기의 발견이 양초업자를 줄였지만 전기산업이 일궈낸 고용창출은 양초산업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로봇은 어떨까. 로봇이 일자리 절반을 빼앗아 간다는 ‘제3의 실업론’도 겁을 준다. ‘제2의 기계시대’를 쓴 에릭 브린졸프슨, 앤드루 맥아피 등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얼마나 잡아먹을 것이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건 인간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1968년 노벨상 수상자 군나르 미르달은 로봇의 발달에 따른 자동화 혁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대규모 실업상태와 소득 불균형이 증가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전후방연관효과 잘 살펴야 

기계가 도입되면 기계가 맡을 일을 해오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후방연관효과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잘 살펴야 한다. 기계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겨난다. 이런 창출효과가 바로 전방연관효과다.

후방효과는 우리들의 씀씀이에서 나온다. 기계화가 되면 원가가 떨어지고 제품 가격도 내려간다. 소비자는 필연적으로 돈을 덜 지출하고 다른 상품소비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소비가 늘면 생산이 늘 것이고, 여기에서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것이 후방연관효과다. 결국 사회 전체의 일자리는 늘어난다는 얘기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기계화와 경제성장의 과실(전체 국민소득)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돌아갔는지를 볼 수 있는 숫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53년 25.8%였던 노동소득분배율이 1990년대 이후 60% 안팎 수준을 유지해왔다. 기계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로봇과 일자리 감소의 상관관계는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자리 감소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 경쟁 제한, 기업가 정신의 쇠퇴와 더 높은 상관성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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