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학생들이 어려워하는 2007년 서울대 수시의 답안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언론에서는 비교적 쉬운 문제었다고 하는데...
과연 쉬운 문제 일까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엔 이제까지 나온 서울대 문제들 중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하기에가장 까다로운 문제중 하나였습니다.
어쨌던 참고하세요...^^
고구려의 촉망받던 왕자 호동의 비극적인 자살은 그 안타까움을 떠나 우리 사회의 효와 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호동의 죽음은 소절에 집착해 대의에 어둡게 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호동이 진정한 효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참고 견디어야 했을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김부식의 의견대로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이 효를 이루어 내기 위한 최선의 길이었을까?
호동은 어머니의 거짓말로 인해 발생한 아버지의 분노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아버지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게 되고 그걸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면 어머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다 주는 양 극단의상황에서 호동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호동의 죽음을 단지 효와 불효의 관점에서 바라 보는 것은 그의 죽음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단견이다.
호동은 고구려 대무신왕의 둘째 아들로써 그의 어머니 또한 둘째 부인이다.
적자가 아닌 왕자이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조국 고구려를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음에 몰아 넣음으로서 그의 비극은 시작된다.
죽음에 앞서서도 자신을 모함한 어머니를 걱정하는 그의 애타적 성품으로 보아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실에 대해 그가 가졌던 죄책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의 태자 책봉을 두려워한 원비의 견제가 점점 심해지고 그의 모함으로 인해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했던 아버지로 부터의 불신이 깊어진다.
왕은 "호동이 예로 대하지 않으니 왕실이 어지렵혀 질지도 모른다"는 원비의 말에 분노한다. 왕의 분노는 호동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기 보다 왕실의 질서가 허트러짐에 대한 경계심인 것이다. 결국 호동이 낙랑정복의 공을 세움으로서 받게 된 영광으로 인해 발생한 갈등인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호동으로서는 결국 죽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 하고자 했다.
그는 죽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속죄를 이루어 내고. 그는 죽음으로 아버지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는 죽음으로 태자 책봉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갈등을 해결했던 것이다.
만약 김부식의 관점대로 살아남아 문제 해결을 시도했더라면 아버지에 대한 효는 이루었을지 모르겠지만 위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태자인 형 사이에서 더 큰 갈등과 혼란의 중심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호동은 죽음으로 의를 실천했고 죽음으로 사회 갈등을 막았다.
이러한 그의 죽음을 단순한 가부장적인 효의 관점으로만 해석하고 비하한다면 그건 효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지나친 편견이다.
유교에서의 효는 사람다움을 실현하기위한 최고의 실천 방향이다.
무엇이 사람다우냐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오직 아버지의 안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안위나 행복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것은 바람직한 효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이런한 점에서 호동의 죽음은 작은 효를 버리고 큰 효를 이룬 것이며 자신을 희생하여
죽어서라도 사람다움을 이룬다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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