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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과 서방 지도자들의 자제(自制)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슬람교 예언자 무하마드 풍자만화를 둘러싼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덴마크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총리는 7일 이번 사태를 “증대하는 지구적 위기(global crisis)”라며 사태 진정을 촉구했다.
이슬람국인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도 의회 연설에서 이번 만평은 “이슬람권의 폭렬을 유발하려는 도발이지만, 이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7일 아프리카의 니제르 의회에서도 의원들이 이번 만평을 처음 보도했던 덴마크와 노르웨이 기를 불태웠다. 또 미국에서 지역 유력지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가 4일 폭탄 터번을 두른 무하마드 만평을 게재해 미국 내 무슬림의 반발을 샀다.
서방 국가의 이번 사태에 대한 논평은 ‘판박이’다. 션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의 말처럼 “반(反)이슬람 이미지는 반유대주의·반기독교적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용납할 수 없지만, 개인의 견해를 자유롭게 밝히는 자유도 지지한다”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 대(對) ‘종교 존중’의 갈등으로 보되, 양측을 다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만평은 박애주의가 가장 강한 북구의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처음 게재됐다. 덴마크에는 나치 당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며, 무슬림 이민자들을 복지 혜택만 누리고 사회에 기여가 없는 ‘2·3류 시민’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덴마크의 파키스탄계 코미디언 오마르 마르주크는 지난 5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이 나라에선 개도 매장지가 있지만, 무슬림에겐 이슬람식 매장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평 사건 이후, 덴마크 내 무슬림과 비(非)무슬림 간 편가르기는 더 심해졌다. 또 스웨덴의 빈민 지역에서 사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스웨덴은 결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모멸적인 발언을 종종 듣는다.
16세기 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이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게 보낸 서한에는 “오스만 권좌에 복종할 것을 기대하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찬란한 이슬람 제국의 술탄으로선 스페인의 무적 함대에 대한 공동 대처를 모색하는 이 서한에서조차 영국 여왕을 동격(同格)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500여년 전 일이고, 근대화에 실패한 지금의 이슬람권은 서양 식민주의에 대한 막대한 피해 의식에 싸여 있다.
무슬림은 9·11테러와 런던 테러 이후에 계속 포위돼 있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뉴욕 롱아일랜드 이슬람센터의 파루크 칸 소장은 “서방의 이슬람국가 이라크 점령이나 유럽의 이슬람 공포증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 무슬림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팔레스타인에서 매일 발생하는 무슬림의 인명 피해를 서방의 ‘잔학상’으로 봐, 조그만 불씨에도 금세 폭발할 기세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거의 매주 발생하는 이슬람 시아파 사원에 대한 대형 폭파 테러와 수많은 무슬림 희생에 대해 중동에서 규탄하는 시위는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전 세계적인 무슬림 분노의 배경에는 ‘정치적 동기’도 많이 작용한다.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내 실정(失政)의 책임을 면하고 서구의 개혁 요구에 대한 불신(不信) 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들 대형 시위를 허용 또는 배후 조종한다는 것이다.
아랍권에서 처음 무하마드 만평을 실었던 요르단 일간지 알 시한의 사설은 “이 만화와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이미지 중에서 어느 것이 이슬람에 더 큰 폐해를 끼쳤는가”라고 물었다. 시한의 편집장은 구속됐다.